세오도아 리들:이것저것 있는 걸 보아하면, 아무래도 파이 가게라거나 있을까 하는 생각이 있기는 했다. 나쁘지 않은 기분이지만. 혼자 나온 건 생각보다 오랜만인 거 같아서. 적당한 상황에 오른 사람처럼 가만히 주위를 두리번거린다. 으음~.
익숙한 음식이네요.
당신이 사랑하는 사람과의 기억이 담긴 음식이기도 하고요.
천천히 주변을 두리번거리면,
어라...?
분명 아까까지만 해도, 이렇게 한산한 거리가 아니었을텐데...
갑자기 시야를 가득 메우는 안개가 나타납니다.
희뿌연 눈앞에 다시 건물이 담김과 동시에
당신은 주변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전부 사라졌음을 깨닫습니다.
세오도아 리들, 이성 체크
세오도아 리들:
SAN Roll
Value:
60/30/12
Rolled:
53
Result:
Success
혼자 남겨졌어요.
이렇게?
갑자기?
그 때입니다.
주머니에 있던 핸드폰이 울려요.
화면을 보니, 루메르트 오토마이어의 이름이 떠 있습니다.
세오도아 리들:이렇게 갑자기 혼자 남겨질 수 있는 거냐고 생각하고 싶은데…… 갑자기 뭔가 우르르 들어가기라도 한 건가? 약간 어이가 없다고 해야 하나. 조금 착잡하던 차에 반가운 이름에 눈을 동그랗게 뜬다. 아무렇지 않게 받는다. 응? 루츠 씨?
얼마 새어나오지도 않은 벨소리였습니다.
거의 무의식적이었죠.
전화를 받으면, 수신 버튼을 누르기 무섭게 루메르트 오토마이어의 목소리가 들립니다.
루메르트 오토마이어:...야? 당황했어? 상황은 대충 알고 있다고 해야 할까. 안내해주는대로 와줄 수 있나?
세오도아 리들:당황…… 했다고 해야 할까. 조금 어이가 없는 상황이기는 하지만. 어떻게 알고 있는 건데요. 의문이 담긴 목소리지만 미약한 한숨이 담겨져 있다. 안내하는 대로? 응. 그건 어렵지 않으니까. 루츠 씨 말인데 내가 싫다고 할 일도 아니고. 그런 정도는.
루메르트 오토마이어:도움을 받게 되었어. 비슷한 상황을 겪어봤다고 하더군. 그러니 올바르게 닿기만 한다면 어렵지 않을 거야. 빠져나오는 것도 말이지.
닐스 야드 세 블록 앞에서 만나. 가는 길은 이쪽에서도 함께 찾아볼테니.
세오. 전화, 끊지 마.
세오도아 리들:으음……. 잠시 말이 없는 건 아무래도 짧게 별로 쓰고 싶지도 않은 생각을 굴리기 위함이다. 이런 상황이 있다. 그리고 루츠 씨가 도움을 받게 되었어. 빠져 나온다는 건 결국 약간 갇혀버린 건가. 별로 이런 상황을 좋아하는 사람 같은 건 없을 텐데……. 생각이 흐려지다 만다. 한숨을 안으로 삼킨다. 약간은 투덜거림과도 같은 호흡.
네에. 알겠어요. 닐스 야드 세 블록 앞에서죠. 무슨 말인지 사실 전혀 모르겠지만 말 들을게.
안 끊어. 끊을 거라고 단정 짓고 말하지 말아줄래요.
루메르트 오토마이어:갇혀버린 입장 치곤 당돌한걸.
무언가 더 덧붙이려다가도 잠시 뜸을 들였다가 말을 잇는다.
알겠어. 그렇다면 지체하지 않고 시작할까. 누구보다 잃고 싶지 않은 게 걸려있어서 말이야.
그럼 우선, 주변에 뭐가 보이는지 말해. 뭐라도 좋아.
세오도아 리들:누군 갇히고 싶어서 갇힌 줄 알아!? 애초에 어떻게 아는 거냐고……. 하아, 됐어요. 투덜거리는 목소리가 여실하지만 이내 가볍게 환기하는 건 순간이다. 오래 집착하지 않는 것과 비슷한. 그러나 덧붙이는 말은 조금은 자조적이다. 뭔지는 모르지만 일단 미안해요. 루츠 씨를 번거롭게 만든 거 같으니까. 이내 간극.
그런 게 있어? 아무렇지 않게 물었고, 이내 으음. 입을 다문다. 주위를 두리번거린다.
안개가 꼈었어요. 건물 정도나 있는 거 같은데요. 사람은 없어.
세오도아 리들, 관찰 판정
세오도아 리들:
관찰력
Value:
70/35/14
Rolled:
52
Result:
Success
주위를 둘러보면 여전히 발밑에는 안개가 깔려 있습니다.
신발이 젖는 듯한 느낌이 찝찝합니다.
루메르트 오토마이어:벌써 그렇게 된 건가. 난감하군... 고개를 들면, 아마 노란색 건물이 눈에 들어올 거야. 그곳에서 해야할 일이 있어.
목소리를 따라 안개 속을 살피면,
우뚝 선 노란 건물 하나가 눈에 들어옵니다.
세오도아 리들:벌써라니……. 고개를 이리저리 기울여가며 살피고 나면, 보이는 건물에 전화를 받은 채로 고개를 끄덕인다. 보이지도 않을 걸 알면서도. 찾았어요. 거기서 해야 하는 거니까 움직이면 되는 건가요? 해야 할 일이라는 건?
루메르트 오토마이어:진행이 빠르네. 맞아. 우선 그쪽으로 이동하면서 통화하도록 할까.
냄새를 가려야 한다 고 조언 받은 참이니 적당한 물건을 찾을 수 있을 거다.
세오도아 리들:댁이 그렇게 말하니까요. 별로 혼자 남는 게, 좋은 기분도 아니니까. 걸음을 건물 쪽으로 선선하게도 옮겨낸다. 제대로 휴대폰은 고쳐쥔다.
냄새를 가려야 한다는 말은 어쩐지 묘하긴 하네요……. 으응. 일단 알겠어. 여기 뭔가 이상하긴 한 거구나. 그런 거 같지만 말이죠. 한숨이 길다.
안개 속을 걷습니다.
금방 나아질 것 같지 않은 날씨네요.
홀로 눈에 띄는 노란 건물로 들어가면,
그곳은 명품관입니다.
온갖 명품 브랜드의 물건들이 널려 있습니다.
여전히 사람은 없지만… 느낌이 묘합니다.
세오도아 리들:……일단 들어왔는데 말이야. 조금 느낌이 안 좋기는 해. 중얼거리는 듯한 목소리다. 아냐. 번거롭게 하지 말자. 입을 짧게 다물고는 주위를 둘러본다. 사람이 이렇게 없는 곳이 가능한 거예요? 전혀 다른 말이나 뱉는다.
루메르트 오토마이어:그러니까 원랜 북적북적한 데이트 코스라고 들었는데, 일이 조금 꼬여버렸다고 해야겠지. 데리러 갈 수 없는 건 미안하네. 이쪽이라고 홀로 해결하고 나오라곤 하고 싶지 않았는데.
주변을 둘러보면 해당 관의 약도가 눈에 들어옵니다.
노란색 건물은 세 파트로 나뉘어져 있습니다.
[ 향수 매장, 화장품 매장, 액세서리 매장 ]
세오도아 리들:됐어. 갇힌 쪽은 나잖아, 루. 사과하지 않아도 괜찮거든. 오히려 미안한 건 내 쪽이니까. 번거롭게 만들고 싶은 건 정말 아닌데. 그래도 이런 나도 좋아하죠? 그렇게 뻔뻔하게 들리지 않는 건 목소리 탓이다. 약간은 침체된 감이 없잖은. 약도를 훑어 바라보다가 읽는다.
향수, 화장품, 액세서리 매장이네. 냄새라면 향수 쪽이려나. 움직여도 괜찮아요?
루메르트 오토마이어:같은 대답이 나올 줄 알고도 묻는 건 역시 확신이 필요하단 소리로 알아들으면 된다는 거지?
핸드폰 너머에서 잠시 웃음을 짓는 지 말이 멎었다가 금새 목소리가 들려온다.
아마 왼쪽에 있을 거야. 향수 매장이라면. 아무도 없을 거라고 들은 참이지만 조심해줘.
세오도아 리들:응. 당연하잖아. 나는 손이 많이 가는 남자라고요. 알고 있는 말도 좀 필요할 때가 있습니다아. 괜히 아무렇지 않게 말한다. 부러 말미를 끌었다가도 움직이는 걸음 자체는 퍽 덤덤하다. 왼쪽이라고 했지. 착실하게 걸음을 옮긴다.
조심할게. 그러니까 걱정 많이 안 해도 괜찮아요. 일단 왼쪽으로 걸었어.
영어로 적힌 가게 이름이 보여요.
대강 향수 가게다운 이름이랄까요.
루메르트 오토마이어:그래, 그 때도 제대로 이런 상황이었지. 좋아하지 않았다면 이렇게 굴 필요도 없었을 거야. 말해두지만 제대로 쌍방이니까, 너랑 나는.
가게는 눈에 들어와? 안쪽까지 안개라면 조금 곤란한데.
세오도아 리들:고쳐쥐는 손을 따라 조금 웃는 소리가 번졌다. 조금 감이 영 좋지 않았던 것도 있지만, 대단하네. 루는. 숨을 한 번 환기하면서 약간은 눌린 듯한 생각을 어떻게든 조금은 끌어다 올린다. 제대로 쌍방이니까. 꽤 듣기 좋은 말이라는 생각이나 하면서.
필요까지 나오는 문제구나. 응, 마음이 놓이네요. 알고 있어. 가게는 눈에 들어오는데요. 이름은…… 영어네. 그냥 딱 향수 가게 같은 이름이에요.
일단 어차피 뭔가 해야 한다면 그 안인 거죠? 문은 제대로 보이는 건지. 워낙에 싸하니까…… 가게의 문을 찾아 본다. 있다면, 일단 열어볼까.
유리문을 열려고 밀어보면,
덜컹
문이 잠겨있네요.
안쪽을 들여다보면 불이 꺼져 있습니다.
세오도아 리들:문 열어보려고 했는데 안 열리는데요. 향수가 아닌 쪽이려나. 화장품도 향은 나기는 하잖아. 어떻게 해야 해요? 열지 마?
루메르트 오토마이어:힘으로 열어서 해결되는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해. 모든 준비는 그 안에서 끝낼 수 있다고 했으니, 우선 다른 곳을 살필까. 어쩌면 열쇠,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를 일이고.
세오도아 리들:힘으로 열 자신이 없진 않지만, 으응……. 별로 이런 데에서 어떻게 하고 싶지는 않으니까요. 동의하듯 고개를 한 번 까딱인다. 무의식적인 행동과도 비슷하다. 정확히는 혼자 있으니까, 그러지 않는 것과 같이 행동하는 게 스스로에게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는 건지도 모를 일이고. 잠시 고민하다가.
그러면 일단 다른 쪽으로 이동해볼게, 루. 일단 화장품 방향부터. 걸음을 옮긴다.
향수 가게의 반대편입니다.
평소라면... 글쎄요.
이런 곳에 와본 적은 있나요...?
화장품 가게에 들어가면 각종 립글로즈, 틴트, 섀도우 등 예쁜 색조 화장품들과
로션, 스킨 등의 기초 화장품들이 한가득 보입니다.
루메르트 오토마이어:이번엔 들어갈 수 있었을 거라고 생각해도 괜찮을까? 상황을 전부 파악하는 건 무리가 있어서 말이야.
세오도아 리들:응. 일단 들어왔어요. 평소라면 볼 일도 거의 없을 것들 뿐이네……. 말을 가볍게 흐리면서 주위를 두리번거린다. 뭔가 있는 건 없는지. 유별나다 싶은 게 있다거나. 그런 것들을 찾아보는 눈이다.
관찰 판정 가능
세오도아 리들:
관찰력
Value:
70/35/14
Rolled:
11
Result:
Extreme
이 화장품들, 전부 새것이네요.
한 번도 사용해보지 않고서도 알 수 있어요.
심지어 테스트용으로 전시해둔 화장품들 또한 한 번도 사용되지 않았습니다.
지능 판정 가능
세오도아 리들:
지능
Value:
70/35/14
Rolled:
9
Result:
Extreme
루메르트 오토마이어:아무래도. 있는 그대로가 좋다고 했었지. 진부한 멘트라고 핀잔들을만도 했다고 생각하지만.
어쩌면 이 장소 자체에 사람이 보이지 않는 것뿐만이 아니라
아예 그 누구도 살지 않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세오도아 리들, 이성 판정
세오도아 리들:
SAN Roll
Value:
60/30/12
Rolled:
94
Result:
Fail
1D4
세오도아 리들:3
이성 -3
세오도아 리들:응……. 진부한 말을 하는 당신도 좋아해요. 조금 작게 중얼거린다. 왜였을까. 언뜻 머리를 친 생각에 괜히 미묘한 기분이 들어버렸던 건. 아마도 단순하게 말하자면, 아무도 없는. 정확히는 어떤 사람도 존재하지 않았다는 듯한 공간에 나 혼자 떨어진 게 좋지 않은 생각을 하게 해서가 아닐까. 하고.
있잖아. 여기 아무도, 없었던 거 같은데. 루.
루메르트 오토마이어:그런가.
잠시 고민하듯 말이 멎었다. 역시 모든 걸 다 알 수 없다는 건 답답하네.
화장품 가게라면, 도움을 줄만한 사람이 있을 거야. 어떤 형태로 보일지는 장담 못해. 그렇지만 분명 존재한다고 말해둘 수 있어.
그리고 불안한가? 이렇게 목소리를 듣고 있는데도.
세오도아 리들:그을……쎄요. 불안한 것처럼 들리나요. 조금은 힘이 빠진 듯한 목소리로 가볍게도 말하면서 주위를 두리번거린다.
불안한 건지는 모르겠어요. 그냥 느낌이 안 좋은 거 같아. 애초에 들어오면서도 비슷하게 생각했던 걸지도. 말이 짧게 멎다가도 이어진다. 형태는 말할 수 없지만 존재구나. 루츠 씨가 그렇게 말하고. 폐 끼치고 있으니까 조금 더 기운은 내볼게요.
즐비한 화장품 매대를 너머 카운터 쪽을 살필까요.
확실히 존재, 한다고 말할 수 있겠네요.
그건 마치 사람의 형상을 한 연기입니다.
세오도아 리들:찾았어요. 희박하지만 존재하는 상대. 나름대로 속은 차리려 하는 듯, 깔끔한 목소리다. 카운터 쪽으로 걸음을 옮긴다. 그 형상에게 아무렇지 않게 물었다. 우선은, 말이 통한다면 좋겠지만.
구분되는 어투는 단정하다. 실례합니다. 향수 가게를 방문하고 싶은데. 혹시 알고 있는 게 있으시려나 싶어서요.
연기의 형상에는 눈이 없지만 어쩐지 당신을 바라보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듭니다.
연기의 팔 부분이 흘러 나가더니,
액세서리 가게의 샹들리에를 정확하게 가리키곤 다시 제자리로 돌아갑니다.
왠지 직원에게서 미묘한 친절함을 느끼기도 잠시,
직원은 자신의 할 일을 위해 어느 새 사라졌습니다.
루메르트 오토마이어:제대로 만난 모양이네. 아직 거기선 괜찮을 거야. 자신의 일이라면 제대로 응해줄 테고. 대답은 들었나?
세오도아 리들:아직이라고 하면 어쩐지 긴장해야 할 거 같지 않아요? 조금은 투덜거리는 듯한 투였다. 제대로 들었어. 문제라면 다른 쪽 가게의 샹들리에를 가리켰는데…… 설마 어떻게 하라는 건 아니겠지. 자신 없는데 말이에요. 물이고 불이고 가릴 때는 아니지만 말야. 액세서리 가게 쪽으로 걸음을 옮긴다.
루메르트 오토마이어:여기선 플래그,라고 해둬야 할까. 내키진 않지만. 그래도 상황이 영화나 드라마 같이 흘러가진 않을 거니까. ...최대한 빨리 다시 만날 수 있길 바라야지.
우선 그쪽으로.
화장품 가게보다 화려한 매장입니다.
문은 열려있어요.
시계, 귀걸이, 목걸이, 반지 등 액세서리의 향연이 눈에 들어옵니다.
특히 당신이 들어선 장소에는 시계 진열대가 늘어져 있습니다.
문득 루메르트 오토마이어에게 이중 하나를 선물해줘도 좋을 것 같다… 는 생각도 드네요.
세오도아 리들:플래그 수거는 별로 하고 싶지 않다고 해도, 마음대로 안 되겠지? 혼잣말인지 아닌지 모를 정도의 무게감 그대로 중얼거리다가도 희미하게 웃는 소리가 난다. 응. 보고 싶으니까요. 조금은 숨을 돌려놓는 행위와 같다. 시계인가? 갑자기 있어도, 애초에 직원이나 제대로 있는 건지 알 길이 없는데. 무슨 시계들인지 우선 가만 훑어본다.
관찰 판정이 가능합니다.
세오도아 리들:
관찰력
Value:
70/35/14
Rolled:
87
Result:
Fail
관찰력
Value:
70/35/14
Rolled:
91
Result:
Fail
여기에 있는 물건을 마음대로 가져가면 봉변을 당할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루메르트 오토마이어:눈에 들어오는 건 있었어? 방금 있었던 곳보단 넓을 거라고 예상된다만.
세오도아 리들:딱히……. 넓은 건 알겠지만, 시계 진열대 정도네요. 별로 시계 보는 눈이 없어서 그런가. 눈이 잘 안 가는 것도 있는 거 같아. 샹들리에 쪽이나 한 번 바라보기 위해 시선을 올린다. 점원도 딱히 있는지 없는지 모르겠고. 루츠 씨한테 돌아가면 시계 선물을 하고 싶은 걸까요. 나.
루메르트 오토마이어:어디서든 당신과 함께이고 싶다 였던가. 시계 선물의 뜻이라면. 안목 없는 선물은 너한테 받는 게 처음이 되겠네. 끊어질 때까지 차고 다녀주도록 할까.
속으로 씹는 말을 내어봤자 분위기만 좋지 못할 걸 알고 있다. 지금은 이대로가 좋다고 생각해버리는 거겠지.
매장 안을 살필 수 있습니다.
세오도아 리들:
관찰력
Value:
70/35/14
Rolled:
3
Result:
Extreme
샹들리에가 화려하게 장식되어 있네요.
그리고, 한 쪽엔 무언가가 끈으로 묶여 있어요.
손을 뻗으면 닿지 않을 높이지만요.
이럴 때 함께였으면 좋았을 텐데.
세오도아 리들:그냥 댁이 잘 차고 다녀주는 거면 충분한데요. 내가 선물한 걸 어디에서나 하고 다녀주는 건 그 자체로도 좋은 일이잖아요, 루츠 씨. 선선하다 싶을 정도의 목소리를 내고는 샹들리에를 가만히도 올려다 본다. 루츠 씨라면 조금이나마 닿았으려나. 당신, 키 크니까……. 나에 비해서는 어쩌면 좀 많이. 앓는 소리가 난다.
루츠 씨의 키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날이 올 줄은 몰랐는데! 부러 가벼이 투덜거리는 소리를 낸다. 끈 같은 걸 발견했어. 놀라지 말라고 미리 말해둘게요. 일단 이거저거 시도하다가 놀라게 하면 미안하니까.
주위에 뭔가 밟고 올라가거나 할 법한 게 있는지 살펴본다.
루메르트 오토마이어:근력 이외엔 전부 이쪽이 위라고 말해둔 게 이렇게 작용할 줄은 몰랐는데.
작게 한숨을 쉬곤 말을 잇는다.
최우선은 다치지 않는 거니까 말이야. 무모한 짓을 할 생각이면 그만둬.
이 근처에 밟고 올라갈 만한 게 있다면 좋을 텐데요.
그런 생각이 들 때, 한 목걸이 장식장이 꽤 높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옆에는 의자도 있어 계단처럼 타고 올라가기도 좋을 것 같아요.
물론, 목걸이들을 온전히 지켜낼 수 있을 지는 미지수지만요.
세오도아 리들:으응……. 근력은 자신 있지만, 나머지는 자신이 없네요. 물론 키도 포함이야. 루츠 씨에 비하자면 나는, 으음. 지금 말해서 좋을지는 모르겠으니까 넘길게요. 나름대로 당신이 들어 좋지 않을 법한 일을 삼가는 것과 같았다. 의자 하나로는 되지도 않는다, 이거지. 높이를 가늠하는 눈이 있다.
하지만, 루. 내가 샹들리에에 손이 닿을 리가 없잖아. 나 튼튼한 거 알죠?
장식장을 밟고 올라간다면, 민첩성 판정입니다.
세오도아 리들:
민첩
Value:
50/25/10
Rolled:
92
Result:
Fail
의자를 밟은 것까지는 좋았는데,
장식장을 밟을 땐 삐끗, 발이 미끄러집니다.
목걸이들이 와르르 무너졌습니다.
요란한 소리네요!
루메르트 오토마이어:세오?
저쪽에도 들린 모양이네요.
세오도아 리들:아냐, 안 다쳤어! 진짜야! 아직 멀쩡해!
그러나 아슬아슬하게, 끈에 달린 열쇠는 손에 넣었습니다.
루메르트 오토마이어:분명, 조심해달라고 말.했을 텐데...
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갑자기 주변에 엄청난 양의 안개들이 몰아칩니다.
바닥이 안개로 잠식 되었습니다.
목걸이 하나가 그 안개 속에 빠짐과 동시에,
염산에 떨어진 것처럼 녹아버립니다.
안개를 밟는 순간 어떻게 될지 모릅니다.
세오도아 리들:아니, 나도 조심하려고는 했지만 방법이 전혀 없었다고요. 안 보인다고 하니까 말하는 거지만, 샹들리에 위에는 내가 손 안 닿아! 당연하잖아요! 나는 당신처럼 키도 안 크고, 손 뻗는다고 되지도 않는단 말이야! 목소리가 괜히 높아진다.
아, 이거 괜찮은 걸까. 아니겠지. 미간이 절로 좁혀진다. 어느 정도 높이를 가진 것이나, 일단 몸을 옮길 수 있는 장소 따위의. 안개가 닿지 않는 곳들을 살펴본다.
우선은 이동해야 합니다.
여기에 서있어봤자, 아무것도 득이 되지 않으니까요.
루메르트 오토마이어:잘 들어. 그 가게에선 처음에 들렀던 향수 매장으로 이동할 수 있는 방법이 있으니까.
아직 장식장 위에선 떨어지지 않았지?
세오도아 리들:듣고 있어요.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여전히 한 번 끄덕인다. 떨어지지는 않았어. 미끄러진 정도였으니까.
루메르트 오토마이어:그쪽에서 향수 가게로 넘어갈 수 있는 길이 있어. 서있는 방향에서 반대쪽로 난 반지 진열대가 보이나? 두 번, 진열대를 밟고 넘으면 갈색 테이블이 있을 거야. 그 위를 밟고 티션 하나를 넘으면 바로 향수 가게 문앞으로 갈 수 있어.
가능하겠어?
세오도아 리들:가능하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라 가능해야 하는 상황이잖아. 속으로 곱씹는다. 두 번, 진열대를 밟고. 갈색 테이블. 그 위를 밟고 파티션 하나. ……미리 말해두지만 힘은 내도 어떨지는 몰라. 노력한다는 뜻이니까 그런 줄 알아요.
세오도아 리들:……전파에 영향을 받나? 끊지 말라고 했는데. 바로 라디오를 꺼본다. 꺼지나? 휴대폰의 전원 역시 다시 켜보고.
라디오의 전원 버튼은 눌린 채, 다시 꺼지진 않는 것 같아요.
휴대폰을 켜본다면, 전자 기기 판정
세오도아 리들:
전자기기 Roll
Value:
65/32/13
Rolled:
13
Result:
Extreme
휴대폰은 단순 기기 이상이었는지 문제없이 켜집니다.
어라?
전화가 끊기지 않은 채입니다.
루메르트 오토마이어:무슨 일이야, 세오. 가게 안엔, 위험이랄 게 없다고 했는데.
당황하며 묻기 무섭게 라디오에서 소리가 흘러나옵니다.
< 도로시, 도로시. 너의 강아지를 봐.
너를 위해 자신을 걸었어. 널 다시 집에 돌려보내려고.
도로시, 불쌍한 도로시. 하나를 얻기 위해서는 하나를 포기해야 하는 법이란다.
집에 돌아갔을 때, 너는 너의 강아지를 잊게 될 거야. 잊어버리게 될 거라고.
추억과 집으로 가는 길을 맞바꾸는 거야.
불쌍한 강아지.
불쌍한 도로시. >
라디오 안쪽에서 작은 낄낄대는 웃음소리가 들리는가 하더니, 소리가 끊깁니다.
세오도아 리들:끊, 겼었어…… 전원이 나갔다고 생각했어. 라디오가 있어서 전원을 켰는데. 그랬는데. 마찬가지로 당황한 건지, 아닌 건지 모를 목소리가 불안하게 약간 떨려 있다. 안 끊겼어요? 내가 괜한 짓을 해서, 미안해요. 그냥 괜찮을 줄 알았어요. 미안해, 루츠 씨.
잠시 떨리는 목소리로 침묵하다가 물었다. ……그런데 방금, 들었어요?
루메르트 오토마이어:괜찮아. 어쩐지 담담한 목소리. 미동 없는 텐션이다. 라디오에서 흘러나온 소리를 못들었을리 없는 데도, 중요한 건 그쪽이 아니니까. 미안해하지 않아도 돼. 그렇게 말했잖아. 이쪽에서 잡고 있었으니 괜찮아. 사과하지 않아도.
... 제대로 못 들었다, 라는 말은 내어줄 수 없겠네. 그렇지?
세오도아 리들:괜찮다는 말에 입을 다문 채로 아무런 말이 없었다. 놀란 건 놀란 거지만, 미안하다고 하지 않아도 되는 건가. 잘 모르겠다는 생각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는 부분이다. 행동의 결과라는 건 놀랐으니까. 무엇보다 불길하게 들어찬 생각을 걷잡기는 어렵다. 라디오에서 등을 조금 돌려내듯 떨어진다.
루메르트 오토마이어:불안하다면, 역시 라디오의 내용처럼 도로시가 되어버릴 것 같단 생각, 때문인가?
세오도아 리들:아니라고는 못 하는 거 알죠. ……생각이 엉망인 기분이네요. 미안, 하고 도로 말하려다가 말을 삼켰다. 조금이라도 생각을 쫓으려는 의도인지, 이리저리 다른 것들로 시선을 옮겨본다.
다른 물건들은 역시나 반짝반짝하고 조그만 소품들일까요.
중간중간 오즈의 마법사를 딴 도자기 인형들이 눈에 띄는 것 뿐.
이상한 물건은 없습니다.
세오도아 리들:유난히 이상한 물건에는 손 대지 말라는 상식을 내게 주고 싶었던 건가 싶어질 지경이다. 한숨을 길게 뱉어내고는 가게 바깥으로 우선 나온다. 아무런 말은 없다.
골동품 가게에서 멀지 않은 곳에 헌책방의 간판이 보이네요.
루메르트 오토마이어:되도록이면 방해받고 싶지 않았는데 말이야. 이렇게 되면 어쩔 수 없네.
이제 와서 믿어달라던가 말해도 소용 없을지도 몰라, 세오. 그렇지만 이쪽도 속은 입장이니까 말이지.
세오도아 리들:……댁이 나한테 거짓말 안 하는 거 알아요. 할 생각이었다면 지금도 하면 된다는 걸 모르지 않으니까요. 이건 소용 없는 걸까. 잘 모르겠지만……. 그렇다면 나한테는 대체 무슨 의미가 남는 건지 잘 모르겠네. 아무런 말이 없다가 이내 이어낸다. 헌책방도 가봐야 할까요. 가라앉아 조용한 목소리다.
헌책방으로 걸음을 옮깁니다.
안개가 걷힌 하늘에선 햇빛이 새어들어오고,
이쪽을 향하는 목소리도 여전해요.
모든 게 완벽한 날입니다.
그래야만 했을텐데.
루메르트 오토마이어:잠시 말을 고르다 찬찬히 올곧은 사실을 전한다. 잘 들어. 화내도 좋아.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는 것도 인정해.
노란 건물로 안내했을 때, 기억해? 누구보다 잃고 싶지 않은 게 걸려 있다고 말했지. 그거, 사실이었으니까.
나를 걸었거든. 너를 이쪽으로 데려오는 것에 대한 대가로.
세오도아 리들:화내도 좋다고. 인정한다고. 상대가 속았다면 여기 갇혀 있는 자신의 쪽이 어떤 염치로 그럴 수 있는 거지? 투덜거림이나 짜증과는 다르다. 한껏 눌린 생각이 빙글빙글 선회하는 생각을 두다가 숨을 눌렀다. 호흡을 가다듬으려 애를 썼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대답 없이 고개를 한 번 끄덕이다가 이내 멎었다.
……뭐? 지금, 뭐라고. 하. 소리가 없다. 스스로를 걸었다고요. 나를, 데려오는 조건으로. 내가 뭐라고 뭔지 모를 상황에서 당신을 걸어!? 속았다고 했잖아. 무슨 말인지 이해했어요? 뭔가 다르다는 거 아냐?
루메르트 오토마이어:그래, 이렇게 반응할 줄 알았어. 그러니까 방해받고 싶지 않았고. 있지, 세오. 이런 상황에 어울리지 않는 말이라고 생각하지만. 숨을 고르고 담담히 말한다. 노란 건물에서 말이야. 시계를 선물하고 싶었어. 제대로 끝까지, 네가 살아가는 모든 시간에 함께하리라고 약속해주고 싶은 건 언제나 이쪽이었으니까. 기억하지. 시계를 선물하는 데엔 시간만큼의 무거운 마음이 담겨야만 한다는 거 말야. 그래도 원래의 조건이렀다면, 나에 대한 기억은 전부 네게 남아야 했어. 약속이 그랬으니까.
대가는 목숨 뿐이었어.
세오도아 리들:……. 아무런 말도 이어지지 않는다. 그나마 어떻게 고르지 못한 채로 오르내리는 숨소리가 그나마 듣고 있구나, 따위를 알 수 있게 하는 것이다. 들리는 말은 분명히 달지. 달기는 하지. 그렇지만, 그렇지 않을까. 무슨 약속이든 알 바냐고 대답할 수 없는 건 상대방의 존재가 루메르트 오토마이어이기 때문이다. 그걸 스스로는 참 잘 알고 있었다. 그 사람이 누구보다 잃고 싶지 않은 것이 걸려 있다고 했다. 스스로를 걸고, 나 자신을 그쪽으로 데려오는 데에 대한 대가로.
……하. 한참의 침묵을 지나고선 겨우 한숨 같은 소리만이 오른다. 이기적이야, 루. 중얼거리는 목소리는 작다. 이런 댁은 어떻게 좋아해야 하는 건지 모르겠다. 그래서 싫다는 말은 추호도 안 나오는 걸 보면 나도 꽤나 중증이구나.
나를 생각했으면서, 나는 전혀 생각 안 했네요. 댁. 담백하게도 말했다.
루메르트 오토마이어:아무것도 잃지 않고 얻을 수 있는 건 없어. 감정도, 사람도. 심지어는 사랑까지도. 그렇지 않아? 나를 사랑하는데 있어 네가 포기해야만 했던 게 단 한 가지도 없었다곤 생각하지 않아. 그건 이쪽에게도 마찬가지인 이야기이기도 해. 잘 듣고 있어? 나는, 네게 기억으로만 남아도 괜찮았다는 얘기야. ... 언젠간 우리가 감수해야 할 이야기였잖아. 스스로 마주할 대로 마주하고 내린 결론이었어. 그러니까 그 과정까진 사과하지 않을 생각이다. 그만큼, 나는 너를 그쪽에 빼앗기고 싶진 않았으니까.
세오도아 리들:한참이나 아무런 말이 없었다. 생각을 정리하기 위해서? 말을 정리하기 위해서였는지도 모르고. 갑자기 툭, 어떠한 소통조차 할 수 없는 순간으로 돌아가버릴 것만 같은 기분에 안으로 뚝, 뚝, 꺾여서는 바닥에 깔리는 기분만 가득하다.
나는 없었어. 당신이 생각하는 나는 뭐라고 생각하는 건지 모르겠지만, 애초에 나는 나 외에는 아무것도 없잖아요. ……언젠가 감수해야 할 이야기라 나를 한참 미리 남겨두자고? 스스로 마주하고선, 내가 화낼 것도 알고 있었죠. ……그래. 알았겠죠! 루츠 씨는 나보다 똑똑하고 머리도 좋고, 분명히 합리적이라고. 최선이라고 생각하는 선택을 했겠죠! 네에, 네. 당신이 그렇게까지 생각해주는데 이렇게 화내는 내가 속이 좁은 거죠! 알고 있습니다. 알고 있다고……. 언뜻 치민 생각을 바깥으로 토해내지 않기 위해 입을 다물었다. 나는 빼앗기는데 말이죠. 네.
루메르트 오토마이어:예상할 수 있는 일이라고 모두 능숙히 대할 수 있는 건 아니다. 태풍이 몰아칠 것을 알고 있다고 하더라도 비가 내리고 물이 불어나고 가로수가 쓰러지면, 창문이 깨지고 더러 집이 무너지고 차들은 쓸려나가니까. 알고 있다고 해서 바뀌는 건 없다. 그저 나는 모든 것을 알고도. 네게 상처가 될 것을 알고도, 그 때로 돌아간다면 같은 결정을 할 게 뻔한 사람이니까. 웃을 수 밖엔 없네. 무력한 존재니까. 사람이란 사랑에게.
아무것도 없다니, 조금 서운한데. 그건. 존재에 대해 물었어. 나를 도와준 사람에게 말이야. 네겐 죽을 만큼 원망스러운 존재가 되겠네. 너는 어떤 상황에서도 나를 원망하진 않을 테니까 말이야. 반드시 옆에 실재한다고 해서 그걸 존재한다고 할 수 있다고 생각해, 세오? 화장품 매장에서 널 도와줬던 점원이나, 내 향수를 뿌리고 나간 날 무심코 올려다보는 조금 높은 시야 처럼. 거기에 없어도 있는 것들이 있어. 그렇기에 나는 네 옆에 계속 남게 될 거라고 생각했었고.
그렇게 따지자면, 오히려 다행인 거 아닌가. 네가 사랑하려고 노력 중ㅇ
인 세계에서, 내가 사라지지 않아도 된다는 소리잖아. 이거.
다시 시작하면 돼. 네가 어떤 모습으로 돌아온다고 해도, 내가 알고 있는 인간 세오도아 리들이란 점은 달라지지 않을 거니까.
세오도아 리들:이런 내가 능숙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던 것도 아니고, 반드시 그러고 싶었던 것도 아니야. 알고 있다고 해서 바뀌는 건 없지만 시도할 수는 있었겠죠. 먼 이야기를 갑자기 당기는 일 같은 게…… 들었을 때 좋을 리가 없잖아요. 반대로 생각해 봐, 루츠. 당신이 말했지. 걱정 정도는 댁 몫으로 남겨달라고. 그런 거야. 이건 그런 거랑 비슷한 마음이라고요. 목소리가 조금 흐려지다가 만다. 이럴 때 무드 있어서 어쩔 건데. 전혀 안 멋있어. 중얼거림.
무슨 소리야. 나에게는 아무것도 없었어요. 없었어. 테오도르 리들이 아니라, 세오도아 리들로 차곡차곡 쌓이기 전까지는 뭣도 없었다고요. ……서운하기는 한 모양이네요. 원망할 수 있을리가 없잖아요. 반드시 옆에 있다고 해서 존재하는 건 아닐 수도 있지. 없어도 있는 건 있겠지. 하지만 죽음은 죽음이니까, 남는 게 아니에요. 기억을 더듬어서 어떻게든 살아가는 거야. 그리고 그걸 알 수 있는 세계를 사랑하는 거겠죠. 댁이 하는 생각 만큼 내 생각은 아름답지 않다고요.
……나는 잊을 수도 있는데? 내가 또, 또, 그럴 수도 있는 건데? 뭐가 괜찮은 거야. 당신이 멀쩡하면 됐지만, 나는 모르겠다고요. 애초에 이마저도 모르게 되겠지. 이기적이야. 루, 당신. 이기적이에요.
그래도 싫다고는 못 하겠어. 숨을 고르는 소리가 여실하다. 미약하게 물기 한 번 씹어 삼키고, 툭. 툭. 어떻게든 털어낸다. 사랑하고, 또 사랑하다 보면 이런 마음도 느낀다던데 진짜네요. 밉다거나 하는 거. 조금 미운 당신도 사랑해. 한숨이 짙다.
이해했다는 뜻은 아니야. 죽을 만큼 싫어. 지금도 그래요. 그래도 당신 말을 듣는 이유는, 알죠. 하. 누가 손이 많이 가는 남자라는 거야.
루메르트 오토마이어:어쩌지. 제대로 달래주려면 같은 하늘 아래 있어야 하는데 말이야. 그럴 수 없네. 잠시 뜸을 들였다. 무슨 말이든, 어떤 거짓말이든 그리 다른 결과를 초래하지 않을 것을 알고 있다. 그동안 쌓아 온 것들. 아무것도 없는 곳에 5분 뒤, 두 시간 뒤, 하루 뒤. 그리고 한 달과 일 년을 넘어서 미래를 그렸다. 루메르트 오토마이어와 세오도아 리들은 그런 길을 걷게 될, 그래. 너는 이런 말을 싫어하겠지만. 운명이었다고 해둘까. 그 많은 소녀들 중 하필 도로시가 이계로 날아가고, 하필 마녀 위로 집이 낙하래 구두를 빌려 신고, 하필 결여된 동료들을 만나 해피엔딩을 얻얻어내기까지의 이야기를, 그렇게 발버둥친 과정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것처럼. 나는 너와 만나 먹고 잠들고 나란히 걸은 시간들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을 테니.
네가 모든 기억을 잃고 돌아온다면. 이번엔, 내가 너를 먼저 사랑할게. 이번만큼은 괜찮지 않을까.
그런 나라도 좋아해줄 거잖아. 틀려?
세오도아 리들:하. 헛웃음처럼 입술이 살짝 뒤틀리고 말아버린다. 너무하네, 댁. 험한 말투가 비실비실 튀어나오는 건 그다지 유하지 않은 성정 탓이다. 세오도아 리들이 아무렇지 않게 루메르트 오토마이어에게 말하는 지점. 당신보다 내가, 하고 말하는 것들의 대해…… 당신의 사랑을 실감하는 것에 대해서는 언제나 새롭기는 하다지만. 마주 보고 있다는 것도 새삼스럽게 확인 받고 싶어하는 사람이었으므로. 그 무게에 대해서 의심하느냐? 아니. 의심하지 않는다. 하지만 나는 꽤 쏟아내고 있는 사람인데. 싸움 중에서 제일 부질 없는 게 사랑 싸움이고, 칼로 물을 베는 행위라더니. 정말로 그러한 것이다. 이런 건 키를 잰다고 해서 달라지지 않는다. 믿는 거지. 사랑 이상의 감정은 결국 신뢰다. 눈을 감고 모르더라도 믿는 것. 그리고 그 믿음이 꺠지지 않으리라 다시금 믿는 것. 시작과 끝이 서로 엉키고 설켜서는 결국에는 귀결되는 듯한.
어쩌겠어? 먼저 좋아하는 사람이 지는 법이라잖아요. 내가 먼저, 그리고 루츠 씨보다 훨씬 많이 좋아하고 있다는 걸 이런 걸로 증명하고 싶지는 않았지만 말이야. 이번에는 내가 져주는 거야, 루. 느리게 눈이 감겼다. 숨을 한 번 들이고, 내쉬는 자연스러움과 같이. 안 괜찮지만, 져준다고.
그런 당신이라도 좋아해서 큰일났죠. 잘 들어둬요. 새로 들으려면 좀 걸릴 거 아냐.
루메르트 오토마이어:아직은 나한테 약한, 가까운 미래의 예비 애인이라는 점에서 감사해야 하나. 별 미련 없이 내뱉는 언어들은 아마 그럴만한 시간도 여력도 남지 않아서일까. 만약 이것이 두 사람에 대한 시험이라면, 글쎄. 승자와 패자의 문제는 아니려나. 언젠간 내가 너에게, 대부분은 네가 나에게 질 수 밖에 없는 거잖아. 네가 제안한 관계란 말이야.
미리 말해둘게. 나는 너와 닐스 야드를 걸을 거야. 이번엔 절대 혼자 설치다가 다친다거나, 이것저것 부수고 다닌다거나 하게 두지 않아. 손도 잡을게. 약속했잖아? 조금은 평범하지 않겠지. 이런 남자에게 초면에 데이트 신청을 받게 될 예정이니까. 기대해도 좋아. 틀림없이 이쪽에 어울릴 수 밖에 없도록 만들어줄테니.
어쩌면 우리는 네가 지금 들르지 못한 헌책방에 들를 테고, 애플 파이를 먹으러 가겠지. 그러다 해가 길어지면 차를 마시고 갓 구운 빵에 파스타를 곁들인다던가. 더 하고 싶은 게 있나? 잊지 않을게.
이제 열 두시야. 세오.
내가 너를 버리게 하지 말아줘. 닐스 야드 세 블록 앞엔 갈림길이 있어. 왼쪽과 오른쪽. 두 가지 뿐이야. 왼쪽을 택해. 그리고 돌아와. 내가 있는 곳으로.
그는 어떤 얼굴을 하고 있을까요.
짐작이라도 할 수 있을까요.
곧 정각을 알리는 종이 울립니다.
선택할 시간이예요.
당신의 몫입니다.
세오도아 리들:아무런 말도 없이, 열 두시라는 말을 듣자마자 광장의 한 가운데. 시계로 시선을 던졌다. 시간은 빠르면서도 느리지. 별로 시간에 대해서 더 생각하고 싶은 일 따위는 사실 없다. 아무래도 좋아. 나는 세오도아 리들이고, 더는 테오도르가 아니다. 그 사실이 여기에 있다. 다시금 이렇게 불러줄 사람을 만나겠지. 당신은 내 안에서 너무 많이 큰 탓에 제가 어느 지점에 서게 될지조차 확실하게 알 수 없다. 하지만 걸음은 빠르게 움직일 뿐이다.
갈림길이 있다고. 닐스 야드 세 블록 앞. 갈림길. 거기서 왼쪽을. 머리에 잘 들어오지도 않는 것은 억지로 집어 넣은 그대로 어떻게든 자신을 옮겨다 둔다. 댁이 나를 버리게 안 해요. 루츠 씨를, 내가 버릴 생각이 없으니까. 짤막하게 토해내는 말을 두고. 시간을 속으로 셈하는 것도 아니다. 공부나 암기나, 별로 그런 걸 좋아하는 것도 아니라 아무래도 좋을 일이다. 왼쪽으로 접어 들기 전에야 말한다.
초면의 남자에게 데이트 신청을 받다니, 내 첫 데이트는 아무래도 다사다난할 모양이네요. 아마 스스로와 엄청 마주해서 대답하려나. 하지만 괜찮을 거예요. 나, 당신의 얼굴. 목소리. 좋아하거든요. 전부라고 말할 수 있게 될 때까지. 미리 무드 있게 부탁해, 루.
돌아갈게. 걱정하지 마. 가벼이 덧붙이고는 왼쪽으로 걸음을 옮긴다.
루메르트 오토마이어:오는 길이 너무 멀다면, 결혼은 어느 계절에 하고 싶은지, 집은 어디에 얻고 싶은지. 식탁은 역시 아일랜드 형이 좋을지, 식물은 어떤 걸 길러볼지. 그런 것들에 대해 고민해봐. 언젠가, 대답해야 할 때가 오지 않겠어.
왼쪽으로 걷습니다.
점점 핸드폰이 꺼지기 직전의 상태가 된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목소리가 옅게 흔들리고 지직거리다가,
소리가 잘 들리지 않습니다.
마지막 인사를 해야 할 때가 왔을 지도 모르겠네요.
루메르트 오토마이어:어렵지 않아, 그대로 앞을 보고 걸어.
세오도아 리들:루츠 씨, 나는 걸음마를 막 뗀 아이가 아니거든요. ……믿었으니까 제대로 찾아내요. 나 특이하니까 어차피 잘 알겠지만요. 좋아해. 결혼은 당신 원하는 계절로 생각해요. 아마 이후에도 이전의 나랑 같은 대답 아니려나. 그대로 앞을 보고 가만히 발을 옮겼다.
그 순간입니다.
왼쪽 길에서 수많은 연기 형상 무리가 나타납니다.
걱정 말아요.
당신은 그저 그렇게 걸어도 괜찮습니다.
연기 형상들은 당신이 있는 지도 모르고 그저 지나칩니다.
당신은 제대로 해냈으니까요.
테오도르 리들은, 이곳에 없으니까.
그러나 찰나, 핸드폰이 완전히 꺼집니다.
당신의 눈앞에는 길이 보입니다.
안개가 이제 완전히 걷히고, 알록달록하고 예쁜 거리만이 남았습니다.
담쟁이 넝쿨과 색색깔의 건물들…….
이대로 앞으로 나아가면 아마도 안전히 원래의 세계에 도착할 것입니다.
당신이 있었던 곳 말이예요.
그렇다면 루메르트 오토마이어는……?
그의 목소리가 떠오릅니다.
닐스 야드 세 블록 앞에서 만나.
……이대로 나아갈까요?
세오도아 리들:여지 없이 걸음을 옮긴다. 나아간다. 데이트 신청 받는 데에도 시간이 있지는 않겠지만, 기다림 정도는 알아서 감수해요.
나가면 파이 가게에 갈까요.
그래서 같이 창가자리에 앉고,
이번에는 당신이 그에게 시계를 선물해도 좋을 겁니다.
좋은 생각을 해야죠.
그래야 웃으며 만날 수 있을 테니까요.
서서히 기억이 사라집니다.
모든 게 흐려져 가요.
당신이 사랑했던 사람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어떻게 생겼더라.
어떤 목소리를 냈더라.
핸드폰 전화상에서의 목소리를 기억하려 애써도 갑자기 막막하기만 합니다.
어떤 언어를 썼고,
어떤 문장을 구사했더라.
그리고 당신이,
루메르트 오토마이어를 어떻게 생각했더라…….
......
그가 누구죠?
당신은 문득 거리의 소음에 정신을 차립니다.
닐스 야드의 행인들이 당신의 주변을 스쳐 지나갑니다.
당신의 뒷골목에는 사람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는 유명한 파이 가게가 보입니다.
그리고 누군가가 당신의 어깨를 두드립니다.
세오도아 리들:무의식적으로 고개가 돌아간다. 약간은 당황감. 순간의 상황에서 그저 의문처럼, 정신을 막 깬 사람이 혼란을 걷잡는 것과 같은 낯이다.
익숙한 얼굴.
하지만 낯선 얼굴입니다.
어째서인가 한 손에 핸드폰을 들고,
어쩐지 애틋한 낯으로 당신을 향해 웃어 보입니다.
루메르트 오토마이어:애플 파이는, 아직 좋아하나?
벌써 취향이 바뀌어버렸다면 조금 곤란한데.
이번엔 제대로 직구로 말할게. 이거, 데이트 신청이니까.
왠지 거절해선 안 될 것 같다는 느낌이 듭니다.
세오도아 리들:네, 네? ……애플파이라면 좋아합니다만? 동그랗게 뜬 눈으로 여전히 의아함이나, 당황은 감추지 못한 눈이 시기를 놓친 것처럼 끔벅거린다.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생각에 역력해지지만.
그……래요. 괜찮다면요? 그러니까, 댁이. 모르는 사람을 무어라 불러야 할지도 모르겠지만 익숙한 것을 선택한다.